심사평
제73회(2024년) 부문별 심사평
피아노
김용배(추계예술대학교 명예교수)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대한민국은 ‘가장 많은 콩쿠르 입상자를 배출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잘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는 마음으로 짧게 첨언하려 합니다. “기본에 충실하자!” 정보 홍수의 시대에 우리들은 유튜브를 통해 수많은 훌륭한 연주, 매력적인 연주, 개성 넘치는 연주를 접하게 됐습니다. 청소년기 학생들이 좋은 연주를 접하고,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음악의 형상을 확실히 설정해 과거보다 훨씬 단축된 시간에 곡을 완성하는 건 분명 바람직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보를 꼼꼼히 분석하고 작곡가의 의도를 세심하게 파악하려 노력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강렬한 개성의 해석, 번뜩이는 재기가 엿보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자연스럽지 않은 연주가 너무 많았습니다. 100여년 전 오로지 악보에만 매달려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그 시대 연주가들의 우직한 자세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음악가들이 꼭 지켜야 할 가치입니다.
바이올린
채유미(상명대학교 교수)
기술적으로 훌륭한 연주를 들려줬으나 좀 더 성숙한 연주를 위해 곡의 전반적인 이해에 따른 소리의 다양한 표현을 연구하여 다채로우면서 자연스러운 음악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주면 좋겠습니다. 초등부와 중학부 참가자들이 에너지 있는 소리와 테크닉으로 열정적인 연주를 들려줬는데, 보이기 위한 자극적인 음악보다 아름다운 음색과 자연스러운 프레이즈로 음악을 조화롭게 만들어주는 연주를 추구하길 바랍니다. 고등부에서는 성숙한 연주를 들려주는 참가자도 있었지만 비브라토, 활 스피드 조절 등으로 긴 프레이즈를 세련되며 깔끔하게 연주하면서 섬세하고 다채로우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통일감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도록 악보 연구가 필요합니다. 특히 자신의 귀로 잘 들으며 구현되는 소리를 체크하는 훈련을 하길 바랍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전 악장 연주로 여러 참가자에게서 잔실수가 보였던 것인데, 특별히 어려운 부분의 실수가 아니었기에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음악을 끌어가는 집중력 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비올라
김재윤(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 수석)
초등부에 참가한 학생들의 기량은 올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지정곡이었던 J B 반할의 협주곡 1악장을 연주하는 데 있어서 전혀 부족함 없는 테크닉과 음악성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다이내믹과 아티큘레이션의 세밀한 변화를 능수능란하게 표현함으로써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기대를 갖게 하였습니다. 중학부와 고등부는 아쉽게도 1위 수상자가 없었습니다. 중학부는 본선 참가자 5명 모두 지정곡인 슈만의 ‘이야기 그림책’을 연주하는 데 있어서 작은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으나 작품이 요구하는 다양한 표정과 변화무쌍한 성격을 구현하는 데 미숙함이 엿보였습니다. 고등부 참가자들은 난도가 상당히 높은 곡인 비외탕의 소나타를 연주하였습니다. 두 참가자 모두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자신들의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미묘한 표현을 연출하는 데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연주였습니다. 학생들이 작곡가의 의도와 작품에 담겨져 있는 스토리를 잘 파악하는 것도 앞으로 훌륭한 음악가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첼로
홍성은(단국대학교 교수)
이번 첼로 부문 본선 진출자는 초등부 6명, 중학부 5명, 고등부 3명이었습니다. 초등부 본선 곡은 보케리니 콘체르토 2번이었는데 초등학생에게는 어려운 곡이었음에도 6명 모두 수준 있는 연주를 보여줘 흐뭇했습니다. 하지만 음력이 높아 연주자 대부분 고음 처리와 음정이 불안했습니다. 포지션에 맞는 바른 자세를 몸에 익혀 올바른 연습을 하길 권합니다. 중학부 지정곡 포퍼 콘체르토는 기본기를 탄탄히 다지는 연습만 잘하면 음악은 저절로 따라오는 곡인데, 연주자 모두 너무 긴장한 듯했습니다. 연습은 연주 때처럼 신중히 하고 연주는 연습 때처럼 편안히, 자신 있게 하길 바랍니다. 고등부 슈베르트 소나타는 테크닉과 음악적인 면에서 어려운 곡이었습니다. 본선 진출자 3명 모두 수준에 미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예선 곡이 예년보다 어려웠던 점을 감안해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1등 없는 2, 3등을 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클라리넷
이임수(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이화경향음악콩쿠르는 70여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 최고의 음악콩쿠르이며, 미래음악계를 이끌어갈 젊은 음악가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잠재력이 풍부하고 기량이 뛰어난 학생들이 많이 참가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기대감과 설렘을 갖고 지켜보았습니다. 어떤 학생은 열정적인 색깔로 자신의 음악을 표현했고 또 어떤 학생은 기교적인 것에만 집중해서 연주하다 보니 일부 정확하지 않은 음정, 호흡 그리고 소리의 질이 다소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학생들의 테크닉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으나 그것에 비해 기본기가 탄탄하지 못한 학생도 보였습니다. 연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탄탄한 기본기와 음악을 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작곡가의 의도를 연구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녹여낼 수 있다면 훌륭한 연주자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번 경연에 참가한 모든 학생들에게는 격려를 보내며 더욱 분발하기를 바라고 입상자들에게는 축하와 더불어 진지하게 음악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플루트
윤혜리(서울대학교 교수)
이번 이화경향음악콩쿠르에서는 특히 중학부 학생들의 기량이 뛰어났습니다. 다양한 음색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는 학생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초등부는 단단한 기본기를 가진 학생들이 많았고 침착한 연주를 했습니다. 하지만 중•고등부로 가면서 몸으로 지나치게 음악을 표현하려 하고 그럼으로써 몸의 중심을 잃고 앙부슈어의 불안정을 유발하며 고개를 흔들면서 연주해 음정의 불안정한 결과를 주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고등부에서 특히 시대별 작곡가의 의도와 스타일에 대한 해석과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연주 공간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그 공간에서 울림을 듣고 반응할 수 있는 능력도 부족했습니다. 무대에서는 본인을 내세우기 전에 작곡가의 작품이 먼저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참가자의 진지한 태도와 많은 시간의 연습으로 쌓인 기량, 음악을 향한 열정을 공감할 수 있는 자리기에 세계적인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래 연주자로서, 전하고자 하는 음악을 관객 입장에서 듣는 상태를 미리 예상해 준비하면 세밀한 부분까지 잘 전달하는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성악
최상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여름이 시작되는 문턱에서 73회째 이화경향음악콩쿠르가 열리게 되었음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꿈을 가득 안고 올해도 수많은 성악도가 그들의 기량을 펼쳐보였습니다. 예년에 비해 고등학생들의 실력이 좋아서 반갑고 기쁘게 생각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소리에 알맞은 곡들을 잘 선택하여 아름다운 목소리와 열정적인 음악으로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매년 고질적으로 지적되어 왔던 독일어 발음이 좋아졌습니다. 대학•일반부의 한국 가곡도 정성껏 준비한 것이 그 결실을 맺어서 보람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한국의 많은 성악가들이 해외의 주요 무대에서 인정 받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에 못지않게 이번 이화경향콩쿠르 참가자들의 미래도 밝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한국의 음악계와 사회에서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들이 맘놓고 활동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무대를 준비하고 마련해 줘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