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의 조언
“콩쿠르 결과는 중요치 않아요, 무대위에서 관객(심사위원)과 소통하는 법 배웠으면 성공한 것이죠”
이화경향음악콩쿠르 선배가 후배들에게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음악을 전공하면서 콩쿠르와의 만남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 전공자라면 누구나 콩쿠르에 대한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이 한데 어우러진 애증의 감정이 있을 것이고, 저 역시 콩쿠르에 관한 파란만장(?)한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74년 처음 도전한 이화경향음악콩쿠르에서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상인 ‘예선 탈락’ 상을 받았습니다. 다음 해 두 번째 도전에서는 평범한 상인 1등 상을 받았죠. 예선 탈락을 특별한 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때의 탈락이 내 자신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와 시간을 가져다줬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무척 아쉽고 창피하기만 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 생각할수록 그때의 실패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가장 고맙고도 특별한 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많은 콩쿠르에 참여하게 될 것이고 그때마다 성공과 실패를 거듭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외형적인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 스스로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점수입니다. 콩쿠르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본인만의 음악적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얼마나 이루었나에 자신을 스스로 점검하고 심사하기 바랍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가 스스로 부여한 어린 시절 그 특별상이 지금까지도 저에게는 가장 값지고 자랑스럽습니다.
음악교육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결국 자기 체험과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주는 스포츠처럼 기록으로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순간 만들어졌다 무대를 떠나는 순간 소멸하여 우리 마음속에 느낌으로만 남게 되는 공연예술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무대 위에서 관객(심사위원)과의 소통 능력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능력은 단순히 ‘연습’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대 경험을 통하여 자기만의 노하우로 습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실질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무대가 바로 콩쿠르 무대입니다. 결과가 나쁘더라도 연주에서 실질적인 노하우와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 콩쿠르는 성공한 것입니다. 반면 결과가 좋더라도 콩쿠르를 통해 깨달은 바가 없다면 길게 볼 때 그 결과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의미 없는 성공보다 의미 있는 실패가 더 값지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참가자 여러분! 올해로 72회를 맞는 이화경향음악콩쿠르는 국내 어느 콩쿠르보다 여러분의 많은 선배의 예술적 흔적과 전통이 깃들어 있는 콩쿠르입니다. 권위 있는 이화경향음악콩쿠르의 참가가 어떤 현실적인 결과나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가 아닌, 훗날 뒤돌아보았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여러분의 음악적 비밀을 만들어 준 아름다운 순간으로 남길 바랍니다. 힘들었던 준비과정, 무대의 소중한 기억, 그리고 연주 후의 선명한 느낌까지 생생히 담긴 여러분만의 ‘음악 인생 스토리’가 이화경향음악콩쿠르에서 만들어지길 바라며 두 손 모아 응원합니다.
“Put all your soul into it, play the way you feel” - Frederic Chopin
(“당신의 모든 영혼을 쏟아붓고 느끼는 대로 연주하라” - 프레더릭 쇼팽)
“음악의 아름다움을 나누는 숭고한 사명을 갖고 정진하길 응원합니다”
이화경향음악콩쿠르 선배가 후배들에게
신수정(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외국 음악가들이 묻습니다. 자기네 음악도 아닌데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서양 음악을 어쩌면 그렇게 잘하느냐고요. 저는 서슴없이 대답합니다. 첫째는 우리 민족의 타고난 ‘끼’, 둘째는 부모님들의 교육열, 셋째는 대한민국의 국력이라고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 이화경향음악콩쿠르가 K-클래식의 원조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52년 11월, 6·25동란의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임시수도 부산에서 어떻게 어린이 음악 콩쿠르를 열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청주사범부속 6학년 열 살짜리 시골뜨기는 경향신문 기사를 보고 신청해 석탄 때는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아마 열 시간은 걸린 것 같아요. 서울에서 피난 내려온 수많은 어린이가 바이올린, 성악, 피아노에 참가했습니다. 합창과 합주부문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부산, 영도. 차가운 바닷바람에 이화여고 천막 임시교실 흙바닥에서 모차르트 소나타를 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인형같이 예쁜 김덕주, 천재 피아니스트 미소년 한동일, 바지 정장을 입은이경숙…. 모두 제1회 이화경향음악콩쿠르 동기들입니다.
그동안 이화경향음악콩쿠르 입상자들을 보면 한국 음악계의 산 역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70여 년 동안 이화경향음악콩쿠르가 배출해낸 연주자들은 뛰어난 기량과 타고난 음악성으로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습니다.
새삼 콩쿠르 창설에 힘쓰신 당시 이화여고 신봉조 교장 선생님과 당시 갓 서른 넘으신 임원식 음악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이 두 분의 선각자적인 혜안이 아니었다면 이화경향음악콩쿠르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두 분께서는 이어서 서울예고를 창립해 한국 예술의 조기교육의 뿌리를 내리셨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견줄 수많은, 미래의 우리 음악계를 이끌고 나갈 꿈나무들이 이화경향음악콩쿠르에 참가할 것입니다. 각자 최선을 다하길 바랍니다. 콩쿠르 성격상 어쩔 수 없는 경쟁의 무대이지만,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음악의 아름다움을 모두와 함께 나누는 숭고한 사명을 어깨에 지고, 어렵지만 계속해서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진하기를 응원합니다.
지난 70여 년의 콩쿠르 역사를 뒤돌아보며 새삼 신봉조, 임원식 두 분 선생님께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드립니다.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