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올해로 73회를 맞는 이화경향음악콩쿠르는 국내 최고의 권위와 역사를 지닌 음악도들의 등용문으로 뿌리를 내렸습니다. 이화경향음악콩쿠르는 국내 음악계의 중추를 이루는 음악인들과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세계적 연주자들을 배출한 '한국 음악의 산실'이고, 이화경향음악콩쿠르의 역사는 바로 '한국 음악의 발전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화경향음악콩쿠르는 1952년 우리나라가 비극적인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고통받을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민족문화의 앞날을 내다보는 훌륭한 교육자들과 선배들에 의해 시작된 이 행사는 단순한 콩쿠르라는 의미를 넘어 우리 민족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는 귀한 뜻이 담겨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화경향음악콩쿠르를 통해 수많은 인재들이 자신들의 음악적 재능을 활짝 꽃피우며 국내외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쳐 왔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김영욱·강동석·김남윤과 피아니스트 한동일·서혜경·이경숙, 첼리스트 정명화 등 세계적 연주자들을 비롯한 2,000여 명의 음악인들이 여러분의 자랑스러운 선배들입니다. 이들 선배의 명성은 단지 콩쿠르에 입상했다는 것만으로 얻어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뼈를 깎는 노력과 끊임없는 정진 그리고 주위의 뜨거운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화경향음악콩쿠르가 여러분들이 앞으로 훌륭한 음악인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값진 체험을 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경향신문사는 음악 꿈나무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마음껏 정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데 더욱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 행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써주신 이화여자고등학교 김혜정 교장선생님, 콩쿠르 조직 위원님들, 공정한 심사를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심사위원님들, 항상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시는 음악인과 학부모 여러분, 그리고 콩쿠르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후원해 주시는 KB국민은행, SK그룹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경향신문사 대표이사 김 석 종
이화여자고등학교와 경향신문사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화경향음악콩쿠르가 올해로 73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매우 뜻깊고 소중한 예술 행사인 이화경향음악콩쿠르가 성황리에 개최됨을 감사하며 축하드립니다.
이화경향음악콩쿠르는 국내 최고의 권위와 역사를 지닌 음악도들의 등용문으로 국내 음악계의 중추를 이루는 음악인들과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세계적 연주자들을 배출한 명실공히 ‘한국 음악의 산실’입니다.
지금까지 본 대회를 통해 배출된 많은 빼어난 재능의 청소년 음악도들이 국내외에서 자신들의 음악적 재능을 활짝 꽃피우며 눈부신 활약을 펼쳐 오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신수정·한동일·서혜경·이경숙·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김영욱,첼리스트 정명화 등 기라성 같은 세계적 음악인들이 이 자리에서 음악의 꿈을 출발시켰습니다.
올해도 역시 이화경향음악콩쿠르를 통해서 우리나라와 세계 음악계에서 활약할 음악 꿈나무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펼쳐 보이기를 기대하며 아낌없는 응원을 보냅니다. 아울러 이 대회가 음악도로서의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더욱 정진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계 곳곳에서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소식이 끊이지 않는 이 시대에 젊은 음악도들이 펼치는 음악의 힘이 기적처럼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세상을 감동시켜 평화를 일구어내는 빛과 소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장 김 혜 정
"60여 년전의 입상감격 여전, 한동일·이경숙씨가 동기"
1952년 11월 청주사범부속초등학교 6학년(당시 11세)으로 2등을 차지한 나는 제1회 이화경향음악콩쿠르를 '굉장한 사건'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콩쿠르의 산파역은 신봉조 당시 이화여고 교장과 임원식 당시 이화여고 음악교사였다. 그들의 음악에 대한 확신과 사랑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역사였다. 게다가 전쟁 시 콩쿠르가 열렸다는 그 자체가 우리 민족의 음악성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제1회 참가자는 대부분 서울에서 피난 온 초등학생들이었고 지방 출신은 극히 드물었다. 나는 비가 온 뒤 진흙으로 변한 땅을 밟고 이화여고 가교사인 텐트 속에서 피아노를 쳤다. 참가자 중에는 정명훈씨의 형제인 명근·명소씨 등이 기억난다. 정명근씨는 바이올린 부문 2등을 차지했다. 그들의 어머니 이원숙 여사는 연주를 앞둔 내 손을 꼭 잡고 "왜 이리 차가우냐"며 녹여주었다. 그때는 예선과 본선곡이 모두 자유곡이었다. 피아노 1등을 차지한 김덕주씨(당시 초등학교 1년)는 앙증맞게 바흐곡을 쳤고, 그와 동갑으로 5등이었던 이경숙씨(연세대 음대 명예교수)는 심사위원석에 자신이 연주할 '바흐 인벤션' 악보를 제출하고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당시 신동 소리를 듣던 한동일씨는 나와 같은 6학년이었는데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했다. 곡이 너무 대작이어서일까. 그는 3등에 그쳤다.
나는 모차르트의 소나타와 멘델스존의 '뱃노래'를 쳤는데 그때 받은 은수저 2벌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시상식과 수상자 연주회는 이화여대 가건물 강당에서 개최되었는데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리고 반세기가 흘렀다. 요즘 우후죽순처럼 콩쿠르가 양산되고 있지만 콩쿠르의 선구자인 이화경향음악콩쿠르가 부모들의 과잉경쟁에 휩쓸리지 않고 건강한 콩쿠르 문화를 계속 선도해 주기를 바란다. 전통과 명예의 이화경향음악콩쿠르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음대 명예교수 신 수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