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SINTERVIEW

전통에서 출발해 지금의 음악을 만드는 일곱 팀의 아티스트를 만났다. 이야기는 음악에서 시작해 각자의 삶으로 이어졌다. 무엇을 좋아하고, 왜 이것을 계속하며,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지. 오래 몸에 익힌 감각과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이 대화 속에 함께 놓였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들이 시도하고 있는 것들에 귀를 기울이며, 전통이라는 매체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상자루

이 악기로, 지금 우리가 좋아하는 소리를

상자루와의 대화에는 유독 ‘맛’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악기의 소리가 맛있게 들리는 방법, 익숙한 소리 안에서 발견하는 다른 맛, 감각을 깨워야 비로소 느껴지는 맛. 전통과 창작에 관한 질문은 어느새 평양냉면 한 그릇 앞에 도착해 있었다.

권효창, 조성윤, 남성훈은 오랫동안 각자의 악기를 익히고 함께 음악을 만들어왔다. 전통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 치열하게 따지던 시간도 있었다. 지금은 자신들이 좋다고 느끼는 음악, 각 악기의 소리가 충분히 살아 있는 음악을 고민한다. 나아가 그 소리로 지금의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찾아가고 있다.

인터뷰 — 류송이, 유상경

‘상자루’로 표기한 답변은 팀 작업 관련 발언을 묶어 정리했다.


“예전에 전통음악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하셨다는 이야기를 읽었어요. 자유롭게 한다는 이유로 국악을 마구잡이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고요. 지금도 그런 기준이 있나요?”

권효창예전에는 저희가 조금 ‘젊은 꼰대’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엇을 지양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계속 선별하고 검열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이 음악이 좋은지 아닌지는 자꾸 뒷순위로 밀리는 거예요. 전통음악인지 아닌지 먼저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그다음에야 좋은 음악인지 생각하게 되는 거죠. 요즘은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것, 내 취향인 것을 먼저 생각해요.

“그렇게 기준이 달라진 지금, 음악을 하면서 어떤 고민을 하고 계세요?”

권효창예전의 제가 지금의 저를 보면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선배들은 제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과정을 이미 몇 바퀴 돌아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이러다가 다시 전통에서 무언가를 출발시키고 싶어질 수 있고요. 다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하다 보면 제 안의 뾰족함까지 없어지는 건 아닐까, 그런 고민은 있어요.

조성윤무엇을 전통으로 볼 것인가 하는 기준도 시간에 따라 바뀌잖아요. 요즘에는 국악의 요소를 얼마나 넣었는지보다 악기의 소리와 질감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저희는 과거의 음악을 재연하는 사람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요. 우리 음악을 하되, 국악기의 소리가 가장 맛있게 들리는 방법을 고민하는 거죠.

상자루

“제가 가야금을 처음 접할 때 선생님이 내는 소리와 제가 내는 소리가 너무 다르더라고요. 같은 음을 내는 것 같은데 맛이 달라요. 꽹과리도 단단한 소리만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연주에서는 부드럽게 들리는 것처럼요.”

권효창평양냉면을 먹을 때와 비슷한 것 같아요. 국물을 한 번 마셨다고 맛이 전부 드러나는 건 아니잖아요. 감칠맛을 느끼려고 감각을 깨우고 탐구하게 되죠. 저는 이제 국악을 들을 때도 거의 그렇게 듣는 것 같아요. 냉면집 앞에서 기다리면서 ‘오늘은 어떤 맛을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처럼요.

“그냥 지나가듯 접하는 감각과는 다르네요. 안으로 들어가서 찾아야 느껴지는 맛이 있는 거군요.”

권효창네. 그런 의미에서는 일상적인 감상의 영역은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차이를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익숙한 맛을 알고 있으니까 그 안에서 달라진 부분도 느끼는 거예요. 만약 평양냉면 대회가 있다면, 먹어본 사람들은 어떤 계열의 맛인지 알면서도 거기에 더해진 개성을 찾아낼 수 있겠죠. ‘익숙한데 다르네. 이거 맛있다’ 하고요. 소리에도 그런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효창의 비유에는 두 가지가 함께 있었다. 오래 듣고 익혀야 알아차릴 수 있는 감각, 그리고 그 감각 안에서도 새롭게 드러나는 개인의 맛. 전통을 안다는 것은 차이를 알아듣는 일이기도 했다.

상자루

“다양한 음악을 하면서도 지켜야 하는 핵심이 있을까요? 어떤 장단이나 음계처럼, 그것이 없으면 한국적인 음악이라고 하기 어려운 요소요.”

조성윤저는 오히려 우리의 악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음악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어떤 방식을 지켜야 국악이 되는가보다, 악기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연주해온 방식이 쌓여서 국악이 된 것에 가깝다고 보는 거죠. 이 악기는 어떻게 연주하기 좋게 만들어졌을까. 어떤

방식일 때 연주자도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이 한국의 소리에 더 가까이 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의 기준을 먼저 가져와서 악기를 맞추기보다, 악기에서 출발하는 거네요.”

조성윤예를 들어 예전의 연주자들이 지금 우리가 배우는 음계의 개념을 먼저 생각하면서 연주했을까 하면, 꼭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이 악기로 이렇게 연주했을 때 이 맛이 좋아서’ 했던 소리가 있었겠죠. 나중에 그것을 분석하면서 어떤 음계나 방식으로 설명하게 된 것이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 설명을 먼저 배우고 악기에 적용하다 보니 순서가 거꾸로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한국적인 소리라고 부르는 것도, 처음에는 누군가가 좋아서 내던 소리였겠네요.”

조성윤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한국의 소리라고 느끼는 것이 사실은 그곳에 살던 어떤 사람의 소리였던 거죠. 그 사람이 악기를 이해하고 연주했던 방식, 개인의 표현이었던 거예요. 그 안의 공통점으로 악기가 있는 것이고요.

“그 말이 시각 작업을 하는 저한테도 힌트가 되네요. 내가 여기서 태어나 이런 것들을 접하고 살아왔으니, 내가 느끼는 것을 표현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조성윤다만 매체에 대한 생각은 있어야 한다고 봐요. 먹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먹을 갈았을 때 생기는 액체의 질감이 있잖아요. 그 성질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나를 표현할지 고민하는 것과, 그냥 붓과 먹이 있으니 그리는 것은 조금 다를 거예요. 아쟁도 마찬가지죠. 이 악기를 알고,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고려하면서 나의 소리를 어떻게 낼 것인가. 제가 생각하는 개인의 표현은 그쪽에 가까워요.

상자루

“상자루의 음악을 듣다 보면 작업의 폭이 넓어요. 이번에는 더 현대적으로, 다음에는 더 전통적으로 하자는 식으로 방향을 정하기도 하나요?”

상자루그런 구분보다 장구가 장구답게 잘 쓰였는지, 아쟁의 소리가 맛있게 들어갔는지를 보면서 음악의 결이 정해지는 것 같아요. 저희는 악기를 오랫동안 연주했고 각자의 악기에 대한 이해가 있으니까요. 그걸 어떻게 조합했을 때 좋은지도 함께 알아왔고요. 그 바탕 위에 그때그때 좋아하는 것들이 들어가는 거죠.

“지금의 취향이나 생활이 음악을 바꾸는 거네요.”

상자루네. 나이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도 바뀌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달라지잖아요. 음악도 그런 것 같아요. 어떤 공연을 위한 작업이라면 거기에 맞는 방향이 있겠지만, 저희 자신의 음악을 만들 때는 지금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돼요. 배워온 전통은 계속 바탕에 있고, 그 위에 들어가는 것들이 달라지는 거죠.

상자루

“전공자가 아닌 관객을 만나면서 달라진 생각도 있나요?”

상자루거리에서 같은 시간에 여러 날 공연한 적이 있어요. 저희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좋아하겠다고 예상한 곡과 실제 반응이 다르기도 했죠. 그런 경험을 하면서 관객이 꼭 팀 이름이나 음악을 기억해줘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각자의 삶도 충분히 고단한데 저희 음악까지 기억해달라고 바라는 건 욕심일 수 있으니까요. 그 시간이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공연을 본 경험 자체가 좋게 남으면 되는 거군요.”

상자루네. 자기 시간을 내서 와준 거잖아요. 그 시간이 좋은 경험으로 남는 게 먼저예요. 저희도 다른 공연을 보면 연주나 음향, 조명을 분석하게 되는데,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좀 더 자유로워져요. 그 순간의 에너지를 어떻게 전하고 교감할지 생각하게 되고요.

권효창우리 음악이 누군가의 일상에 스며든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왔어요. 그렇다고 마니악한 장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숨고 싶지는 않아요. 계속 돌파구를 찾고 싶어요. 음악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영향을 주었을 때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는 상자루의 돌파구를 찾고, 누군가는 이 음악으로 일상에서 새로운 감각과 생명력을 얻으면 좋겠어요.

상자루

“개인 작업을 할 때와 상자루의 음악을 만들 때는 어떻게 다른가요?”

조성윤상자루에는 이미 하나의 캐릭터가 있어요. 같이 지내온 시간이 길다 보니 작업하면서 효창이나 성훈이가 어떻게 생각할지 굳이 하나하나 따져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개인 작업에서는 제 가치가 중요하다면, 상자루의 곡을 쓸 때는 상자루의 가치가 중요해요. 상자루라는 사람을 위해 곡을 쓰는 느낌이죠.

“그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겠네요.”

조성윤그렇죠. 어떤 시기에는 효창이가 강조한 생각이 상자루의 생각이 되기도 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기도 해요. 그때 ‘왜 바뀌었어?’라고만 보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 과정도 상자루라는 인물의 시간이라고 보면 성장 과정인 거예요.

“지금의 세 사람을 하나의 모습으로 그린다면요?”

조성윤삼각형 같아요. 세 꼭짓점이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이고, 함께 보낸 시간이 선이 되어 우리를 이어주는 거죠. 그 사이가 채워지면서 면이 생기고, 그게 상자루의 음악이 되는 것 같아요. 생각하는 방식과 취향은 다르지만 계속 연결되고 채워지는 거예요.


삼각형의 세 꼭짓점은 서로 다른 자리에 있다. 그 사이를 잇는 것은 함께 듣고 연주하며 보낸 시간이다. 상자루가 배워온 전통도, 지금 좋아하는 음악도 그 면 안에 놓인다.

악기의 맛을 알아가는 일과 자기 소리를 만드는 일이 그렇게 이어지고, 오늘 이들이 좋아서 연주한 소리 역시 그 안에 새로운 시간을 더한다.